Sophia: 네세바르의 누드 해변에서 벌인 과감한 휴가 실험이 부끄러움과 해방감, 배구 코미디, 그리고 훗날 남편이 될 사람과의 뜻밖의 첫 설렘이 뒤섞인 잊지 못할 순간으로 이어진 이야기.
사람들이 우리가 어디서 만났느냐고 물을 때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답한다.
“해변에서요.”
엄밀히 말하면 사실이다. 다만 그곳이 누드 해변이었다는 것, 내가 완전히 벌거벗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가 배구공으로 내 머리를 실수로 맞힌 뒤에 자기소개를 했다는 것까지는 굳이 말하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야기해보자.
그 일은 불가리아, 네세바르에서 일어났다. 나는 친구 에밀리와 그녀의 남편 빌과 함께 휴가를 갔다. 벌써 세 해째 그곳에서 여름을 보내던 참이었다. 아담하고 아늑한 호텔, 바다, 햇살, 구시가지 산책, 그리고 일주일만큼은 삶이 한결 단순해지는 듯한 그 느낌.
하지만 그해엔 에밀리와 나는 평범한 휴가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마음먹었다.
예전에 우리는 고향에서 누디스트에 관한 TV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우리에겐 거의 극단적인 일처럼 느껴졌다. 스카이다이빙이나 행글라이딩 같은 거랄까. 그녀의 주방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웃다가 우리는 이렇게 말했다.
“수영복 하나 없이 해변에 누워 있다는 거, 상상이 돼?”
“게다가 살 탄 자국도 안 생기고?”
“그리고 주변 사람들도 다 벌거벗고 있고?”
처음엔 그저 상상이었다. 그러다 하나의 도전 과제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 둘 다 다음 휴가 때는 꼭 해보자고 결심했다.
빌은 당연히 탐탁지 않아 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우리가 마음을 바꾸길 바란다는 게 얼굴에 훤히 드러났다.
우리는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무더운 어느 날, 우리는 누드 해변으로 향했다. 나는 마치 그러려고 태어난 사람처럼 걸어갔다. 당당하고, 용감하고, 여유롭게. 물론 속은 그만큼 대단하지 못했다. 심장은 쿵쾅거렸고, 손바닥은 살짝 땀에 젖었으며,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만 맴돌았다. “막판에 겁먹으면 어쩌지?”
해변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대부분 독일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은 마치 자기 집 주방에 있는 것처럼 누드 해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그들은 수건 위에 누워 이야기를 나누고, 헤엄을 치고, 배구를 했다. 부끄러움도, 소란도, 금기를 넘었다는 극적인 긴장감도 없었다.
바로 그게 나를 당황하게 했다.
집에서 커피를 마시며 에밀리와 누드 해변을 꿈꾸는 건 하나의 일이었다. 실제로 그곳에, 현실 속에 서 있는 건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 벌거벗은 채 아름답고 자유롭게 일광욕하는 나를 상상하는 것과, 진짜 해변에 서서 이제 정말 수영복을 벗어야 한다는 걸 깨닫는 건 별개였다.
에밀리와 나는 망설였다. 아마 우리는 돌아설 뻔했던 것 같다.
그때, 하루 종일 시무룩하던 빌이 불쑥 말했다.
“어때요, 용감한 숙녀분들? 아니면 주방에서만 영웅이신가?”
그게 그의 실수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우리 안의 여자로서의 자존심이 한꺼번에 깨어났으니까.
우리는 한쪽으로 조금 떨어진 자리를 찾아 수건을 펼치고 옷을 벗기 시작했다. 먼저 원피스를 벗었다. 그다음 천천히 수영복 상의 끈을 풀었다. 그리고 하의까지. 그렇게 나는 완전히 벌거벗은 채 햇살 아래 서 있었다.
처음 몇 초는 낯설었다.
아주 낯설었다.
모두가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내 몸이 갑자기 너무 훤히 드러난 것만 같았다. 평소 천에 덮여 있던 피부가 더 크게, 더 뜨겁게, 더 생생하게 살아난 듯했다. 가슴에, 배에, 허벅지에, 등에 닿는 햇살이 느껴졌다. 조금 전까지 수영복 끈이 있던 자리에 스치는 바람이 느껴졌다.
나는 부끄러웠다.
하지만 그 부끄러움은 불쾌하지 않았다. 날카롭고, 짜릿하고, 거의 달콤했다. 그 안엔 두려움도 있었고 쾌감도 있었다. 언제나 금기라고 여겨왔던 무언가를 저지른 듯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다.
옆에 선 에밀리도 나와 똑같아 보였다. 얼굴은 발갛게 상기됐고, 들뜬 표정에 행복해 보였으며, 모든 게 통제되고 있다는 듯 애써 태연한 척하고 있었다.
그럼 빌은?
이 대단한 도발자 빌은, 여전히 수영 팬티를 입은 채였다.
에밀리와 나는 그에게 눈빛을 보냈다. 이건 두고두고 기억하겠다는 뜻이 분명히 담긴 눈빛을.
처음 30분 동안 우리는 그저 햇볕 아래 누워 우리 자신에 익숙해졌다. 나는 손으로 몸을 가리지 않으려 애썼다. 본능적으로 몸을 숨기고 싶었지만. 그러다 아무도 우리에게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걸 알아챘다. 그건 안도이면서 동시에 살짝 실망스럽기도 했다.
어쨌든 우리는 하나의 영웅적인 위업을 해냈으니까.
하지만 해변은 그저 제 삶을 계속 이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에밀리가 말했다.
“이왕 이렇게 용감해진 거, 뭔가 더 해봐야지.”
멀지 않은 곳에서 사람들이 비치발리볼을 하고 있었다. 거의 다 벌거벗은 채였다. 햇살, 모래, 웃음소리, 움직이는 몸들, 그리고 우리에겐 아직 없는 그 가벼움. 우리는 끼어들기로 했다.
솔직히 인정해야겠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 공을 본 사람처럼, 그리고 그 공을 개인적인 원수로 여기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배구를 한다. 어쩌다 공을 맞히더라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그래도 나는 그저 오해받고 있을 뿐인 프로 선수의 표정을 유지했다.
벌거벗고 하는 배구는 어색하면서도 믿기 힘들 만큼 재미있었다. 젖은 천도, 끈도 없이, 수영복이 엉뚱한 데로 흘러내릴까 하는 걱정도 없이 몸이 자유롭게 움직였다. 나는 뛰고, 웃고, 얼굴을 붉히고, 또 웃었다. 처음엔 내 몸의 모든 움직임을 사람들이 다 보는 것 같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게 가장 좋았다.
나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설렘을 느끼기 시작했다. 피부에 닿는 바람. 발밑의 모래. 어깨 위의 햇살. 살아 있고, 여성스럽고, 열린 내 몸. 완벽하지도, 꾸며진 것도 아니지만 온전히 나의 몸. 그 벌거벗음 속에서 나는 점점 더 편안해졌다.
한참 뒤 나는 에밀리와 잠시 자리를 떠 소감을 나눴다. 그녀는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고, 방금 아주 야하면서도 아주 멋진 일을 저지른 사람처럼 활짝 웃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왜 우리가 진작 이걸 안 했는지 모르겠어.” 그녀가 말했다.
내가 막 맞장구를 치려던 참에, 뭔가가 뒤통수를 꽤 아프게 때렸다.
배구공이었다.
평범한 상황이었다면 나는 웃어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이 상황은 그냥 흘려보내기엔 너무나 연극적이었다.
나는 눈을 굴리고 머리를 감싸 쥔 채, 곧 정신을 잃을 것처럼 극적으로 에밀리에게 기댔다.
“아 안 돼.” 나는 신음했다. “내 누디스트 커리어가 너무 일찍 끝나버린 것 같아.”
에밀리는 곧바로 장단을 맞춰줬다.
“숨 쉬어! 숨 쉬라고!”
마침내 놀란 빌이 수건에서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장 먼저 내게 다다른 사람은 바로 그 장본인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부터 이야기가 더 흥미로워졌다.
그는 키가 크고, 햇볕에 그을렸으며, 살짝 당황한 얼굴에, 아주 잘생긴 남자였다. 누드 해변에서 실수로 벌거벗은 여자의 머리를 배구공으로 맞히기 전까지는 자신만만해 보였을 그런 부류의 남자.
그는 서툰 영어로 사과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진지하게, 그러다 당황해서 농담을 던지려다, 다시 사과했다. 그가 몹시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게 훤히 보였다.
그리고 어쩐 일인지, 그게 무척 사랑스러웠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괜찮아요?”
“살아남을지도 모르겠네요.” 나는 최대한 비극적인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는 웃었지만, 여전히 미안해하는 눈치였다.
그의 이름은 군터였다. 독일 사람이었지만 뉴욕에서 한동안 일한 적이 있어 영어를 조금 할 줄 알았다. 그가 사과를 거듭할수록 나는 이 연기를 그만두고 싶어졌고, 대신 그가 적어도 1분만 더 내 곁에 있어주길 바라게 되었다.
우습게도, 바로 그 순간 나는 그의 앞에 벌거벗은 채 서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예리하게 의식했다.
예쁜 원피스 차림도 아니고, 수영복 차림도 아니고, 머리를 매만지고 신비로운 척할 여유도 없이. 그저 나였다. 햇살에 따뜻해지고, 살짝 헝클어지고, 피부엔 모래가 묻은 채, 우리가 만난 이유라고는 배구공 하나뿐인 상태의 나.
그런데도 나는 더 이상 숨고 싶지 않았다.
물론 여전히 부끄러웠다. 하지만 이제 그 부끄러움은 달랐다. 그것은 나를 움츠러들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안엔 따뜻하고 짜릿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가 나와 눈을 맞추려 애쓰고 있다는 걸, 그도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걸, 그 역시 이 낯설고 아찔한 상황을 느끼고 있다는 걸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사이에 곧바로 살아 있는 무언가가 피어났다.
에밀리는 나중에 내가 거의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도 너무 빨리 되살아났다고 말했다. 나는 좋은 의료 서비스란 때때로 아름다운 미소를 지닌 키 큰 독일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대꾸했다.
모든 사과가 끝난 뒤, 군터는 자기 일행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나는 호텔 방 창턱에서 꽃다발을 발견했다.
거창한 말은 없었다.
그저 꽃과 짤막한 사과 쪽지뿐.
그다음엔 산책이 이어졌다. 그다음엔 커피. 그다음엔 해변에서의 또 하루. 그다음엔 저녁의 네세바르, 오래된 골목들, 어둠 속의 바다, 그리고 가볍게 시작했다가 문득 옆에 있는 사람이 더는 우연한 사람이 아니라는 깨달음으로 끝나는 대화들.
하지만 그건 또 다른 이야기다.
그래도 솔직히, 모든 것은 그곳에서 시작되었다. 그 누드 해변에서. 내가 처음으로 단지 벌거벗은 게 아니라 자유롭다고 느낀 그곳에서. 내 몸이 더는 가려야 할 무언가가 아니게 된 그곳에서. 부끄러움이 처음엔 타올랐다가, 이내 녹아내리고, 그러다 용기로 바뀐 그곳에서.
나는 누디즘이 이국적인 것, 오락거리, 휴가의 모험쯤이라 생각하며 그곳에 갔다. 하지만 그것은 훨씬 더 깊은 무언가였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에 관한 것이었다. 당신의 몸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사과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는, 그 낯설고 아름다운 순간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다, 때로는 그것이 무척 섹시하기도 하다.
천박한 방식이 아니라, 살아 있고, 매력적이며, 진짜라고 느껴지는 그런 방식으로. 경계 없이 햇살이 피부에 닿을 때, 어떤 천도 만나지 않고 바람이 스칠 때, 누군가의 시선을 마주하고도 숨지 않을 때.
이제 친구들이 남편과 내가 어디서 만났느냐고 물으면, 우리는 여전히 이렇게 답한다.
“해변에서요.”
엄밀히 말하면 사실이니까.
모든 세세한 이야기가 가족 식사 자리에 어울리는 건 아니다.
“해변에서요.”
엄밀히 말하면 사실이다. 다만 그곳이 누드 해변이었다는 것, 내가 완전히 벌거벗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가 배구공으로 내 머리를 실수로 맞힌 뒤에 자기소개를 했다는 것까지는 굳이 말하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야기해보자.
그 일은 불가리아, 네세바르에서 일어났다. 나는 친구 에밀리와 그녀의 남편 빌과 함께 휴가를 갔다. 벌써 세 해째 그곳에서 여름을 보내던 참이었다. 아담하고 아늑한 호텔, 바다, 햇살, 구시가지 산책, 그리고 일주일만큼은 삶이 한결 단순해지는 듯한 그 느낌.
하지만 그해엔 에밀리와 나는 평범한 휴가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마음먹었다.
예전에 우리는 고향에서 누디스트에 관한 TV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우리에겐 거의 극단적인 일처럼 느껴졌다. 스카이다이빙이나 행글라이딩 같은 거랄까. 그녀의 주방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웃다가 우리는 이렇게 말했다.
“수영복 하나 없이 해변에 누워 있다는 거, 상상이 돼?”
“게다가 살 탄 자국도 안 생기고?”
“그리고 주변 사람들도 다 벌거벗고 있고?”
처음엔 그저 상상이었다. 그러다 하나의 도전 과제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 둘 다 다음 휴가 때는 꼭 해보자고 결심했다.
빌은 당연히 탐탁지 않아 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우리가 마음을 바꾸길 바란다는 게 얼굴에 훤히 드러났다.
우리는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무더운 어느 날, 우리는 누드 해변으로 향했다. 나는 마치 그러려고 태어난 사람처럼 걸어갔다. 당당하고, 용감하고, 여유롭게. 물론 속은 그만큼 대단하지 못했다. 심장은 쿵쾅거렸고, 손바닥은 살짝 땀에 젖었으며,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만 맴돌았다. “막판에 겁먹으면 어쩌지?”
해변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대부분 독일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은 마치 자기 집 주방에 있는 것처럼 누드 해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그들은 수건 위에 누워 이야기를 나누고, 헤엄을 치고, 배구를 했다. 부끄러움도, 소란도, 금기를 넘었다는 극적인 긴장감도 없었다.
바로 그게 나를 당황하게 했다.
집에서 커피를 마시며 에밀리와 누드 해변을 꿈꾸는 건 하나의 일이었다. 실제로 그곳에, 현실 속에 서 있는 건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 벌거벗은 채 아름답고 자유롭게 일광욕하는 나를 상상하는 것과, 진짜 해변에 서서 이제 정말 수영복을 벗어야 한다는 걸 깨닫는 건 별개였다.
에밀리와 나는 망설였다. 아마 우리는 돌아설 뻔했던 것 같다.
그때, 하루 종일 시무룩하던 빌이 불쑥 말했다.
“어때요, 용감한 숙녀분들? 아니면 주방에서만 영웅이신가?”
그게 그의 실수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우리 안의 여자로서의 자존심이 한꺼번에 깨어났으니까.
우리는 한쪽으로 조금 떨어진 자리를 찾아 수건을 펼치고 옷을 벗기 시작했다. 먼저 원피스를 벗었다. 그다음 천천히 수영복 상의 끈을 풀었다. 그리고 하의까지. 그렇게 나는 완전히 벌거벗은 채 햇살 아래 서 있었다.
처음 몇 초는 낯설었다.
아주 낯설었다.
모두가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내 몸이 갑자기 너무 훤히 드러난 것만 같았다. 평소 천에 덮여 있던 피부가 더 크게, 더 뜨겁게, 더 생생하게 살아난 듯했다. 가슴에, 배에, 허벅지에, 등에 닿는 햇살이 느껴졌다. 조금 전까지 수영복 끈이 있던 자리에 스치는 바람이 느껴졌다.
나는 부끄러웠다.
하지만 그 부끄러움은 불쾌하지 않았다. 날카롭고, 짜릿하고, 거의 달콤했다. 그 안엔 두려움도 있었고 쾌감도 있었다. 언제나 금기라고 여겨왔던 무언가를 저지른 듯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다.
옆에 선 에밀리도 나와 똑같아 보였다. 얼굴은 발갛게 상기됐고, 들뜬 표정에 행복해 보였으며, 모든 게 통제되고 있다는 듯 애써 태연한 척하고 있었다.
그럼 빌은?
이 대단한 도발자 빌은, 여전히 수영 팬티를 입은 채였다.
에밀리와 나는 그에게 눈빛을 보냈다. 이건 두고두고 기억하겠다는 뜻이 분명히 담긴 눈빛을.
처음 30분 동안 우리는 그저 햇볕 아래 누워 우리 자신에 익숙해졌다. 나는 손으로 몸을 가리지 않으려 애썼다. 본능적으로 몸을 숨기고 싶었지만. 그러다 아무도 우리에게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걸 알아챘다. 그건 안도이면서 동시에 살짝 실망스럽기도 했다.
어쨌든 우리는 하나의 영웅적인 위업을 해냈으니까.
하지만 해변은 그저 제 삶을 계속 이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에밀리가 말했다.
“이왕 이렇게 용감해진 거, 뭔가 더 해봐야지.”
멀지 않은 곳에서 사람들이 비치발리볼을 하고 있었다. 거의 다 벌거벗은 채였다. 햇살, 모래, 웃음소리, 움직이는 몸들, 그리고 우리에겐 아직 없는 그 가벼움. 우리는 끼어들기로 했다.
솔직히 인정해야겠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 공을 본 사람처럼, 그리고 그 공을 개인적인 원수로 여기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배구를 한다. 어쩌다 공을 맞히더라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그래도 나는 그저 오해받고 있을 뿐인 프로 선수의 표정을 유지했다.
벌거벗고 하는 배구는 어색하면서도 믿기 힘들 만큼 재미있었다. 젖은 천도, 끈도 없이, 수영복이 엉뚱한 데로 흘러내릴까 하는 걱정도 없이 몸이 자유롭게 움직였다. 나는 뛰고, 웃고, 얼굴을 붉히고, 또 웃었다. 처음엔 내 몸의 모든 움직임을 사람들이 다 보는 것 같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게 가장 좋았다.
나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설렘을 느끼기 시작했다. 피부에 닿는 바람. 발밑의 모래. 어깨 위의 햇살. 살아 있고, 여성스럽고, 열린 내 몸. 완벽하지도, 꾸며진 것도 아니지만 온전히 나의 몸. 그 벌거벗음 속에서 나는 점점 더 편안해졌다.
한참 뒤 나는 에밀리와 잠시 자리를 떠 소감을 나눴다. 그녀는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고, 방금 아주 야하면서도 아주 멋진 일을 저지른 사람처럼 활짝 웃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왜 우리가 진작 이걸 안 했는지 모르겠어.” 그녀가 말했다.
내가 막 맞장구를 치려던 참에, 뭔가가 뒤통수를 꽤 아프게 때렸다.
배구공이었다.
평범한 상황이었다면 나는 웃어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이 상황은 그냥 흘려보내기엔 너무나 연극적이었다.
나는 눈을 굴리고 머리를 감싸 쥔 채, 곧 정신을 잃을 것처럼 극적으로 에밀리에게 기댔다.
“아 안 돼.” 나는 신음했다. “내 누디스트 커리어가 너무 일찍 끝나버린 것 같아.”
에밀리는 곧바로 장단을 맞춰줬다.
“숨 쉬어! 숨 쉬라고!”
마침내 놀란 빌이 수건에서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장 먼저 내게 다다른 사람은 바로 그 장본인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부터 이야기가 더 흥미로워졌다.
그는 키가 크고, 햇볕에 그을렸으며, 살짝 당황한 얼굴에, 아주 잘생긴 남자였다. 누드 해변에서 실수로 벌거벗은 여자의 머리를 배구공으로 맞히기 전까지는 자신만만해 보였을 그런 부류의 남자.
그는 서툰 영어로 사과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진지하게, 그러다 당황해서 농담을 던지려다, 다시 사과했다. 그가 몹시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게 훤히 보였다.
그리고 어쩐 일인지, 그게 무척 사랑스러웠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괜찮아요?”
“살아남을지도 모르겠네요.” 나는 최대한 비극적인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는 웃었지만, 여전히 미안해하는 눈치였다.
그의 이름은 군터였다. 독일 사람이었지만 뉴욕에서 한동안 일한 적이 있어 영어를 조금 할 줄 알았다. 그가 사과를 거듭할수록 나는 이 연기를 그만두고 싶어졌고, 대신 그가 적어도 1분만 더 내 곁에 있어주길 바라게 되었다.
우습게도, 바로 그 순간 나는 그의 앞에 벌거벗은 채 서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예리하게 의식했다.
예쁜 원피스 차림도 아니고, 수영복 차림도 아니고, 머리를 매만지고 신비로운 척할 여유도 없이. 그저 나였다. 햇살에 따뜻해지고, 살짝 헝클어지고, 피부엔 모래가 묻은 채, 우리가 만난 이유라고는 배구공 하나뿐인 상태의 나.
그런데도 나는 더 이상 숨고 싶지 않았다.
물론 여전히 부끄러웠다. 하지만 이제 그 부끄러움은 달랐다. 그것은 나를 움츠러들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안엔 따뜻하고 짜릿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가 나와 눈을 맞추려 애쓰고 있다는 걸, 그도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걸, 그 역시 이 낯설고 아찔한 상황을 느끼고 있다는 걸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사이에 곧바로 살아 있는 무언가가 피어났다.
에밀리는 나중에 내가 거의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도 너무 빨리 되살아났다고 말했다. 나는 좋은 의료 서비스란 때때로 아름다운 미소를 지닌 키 큰 독일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대꾸했다.
모든 사과가 끝난 뒤, 군터는 자기 일행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나는 호텔 방 창턱에서 꽃다발을 발견했다.
거창한 말은 없었다.
그저 꽃과 짤막한 사과 쪽지뿐.
그다음엔 산책이 이어졌다. 그다음엔 커피. 그다음엔 해변에서의 또 하루. 그다음엔 저녁의 네세바르, 오래된 골목들, 어둠 속의 바다, 그리고 가볍게 시작했다가 문득 옆에 있는 사람이 더는 우연한 사람이 아니라는 깨달음으로 끝나는 대화들.
하지만 그건 또 다른 이야기다.
그래도 솔직히, 모든 것은 그곳에서 시작되었다. 그 누드 해변에서. 내가 처음으로 단지 벌거벗은 게 아니라 자유롭다고 느낀 그곳에서. 내 몸이 더는 가려야 할 무언가가 아니게 된 그곳에서. 부끄러움이 처음엔 타올랐다가, 이내 녹아내리고, 그러다 용기로 바뀐 그곳에서.
나는 누디즘이 이국적인 것, 오락거리, 휴가의 모험쯤이라 생각하며 그곳에 갔다. 하지만 그것은 훨씬 더 깊은 무언가였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에 관한 것이었다. 당신의 몸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사과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는, 그 낯설고 아름다운 순간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다, 때로는 그것이 무척 섹시하기도 하다.
천박한 방식이 아니라, 살아 있고, 매력적이며, 진짜라고 느껴지는 그런 방식으로. 경계 없이 햇살이 피부에 닿을 때, 어떤 천도 만나지 않고 바람이 스칠 때, 누군가의 시선을 마주하고도 숨지 않을 때.
이제 친구들이 남편과 내가 어디서 만났느냐고 물으면, 우리는 여전히 이렇게 답한다.
“해변에서요.”
엄밀히 말하면 사실이니까.
모든 세세한 이야기가 가족 식사 자리에 어울리는 건 아니다.